​챗 GPT GPT 지브리 열풍이 불기 전인 23년, 회사 업무용 유료 계정을 공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주로 개발자들이 이용했고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주를 본다거나 문서 작성 보조 용으로 쓰는 정도였다. 그렇게 잊고 있던 챗 GPT를 지브리 열풍에 올라타 사용해 보고 월 29,000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기대가 컸다. 월 3만 원에 달하는 돈,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제 내 머릿속을 정리해 줄 파트너가 생겼구나.” 기대감과 함께 나는 그렇게 새로운 도구 하나를 얻었다.​그러던 어느 날 너무 느린 응답 속도와 예상치 못한 에러 메시지를 보며, 나는 결국 폭발했다. GPT 더 화가 났던 것은 이미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3시간에 25개 질문으로 제한이 되어 있는 등 무료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된 것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프로를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발자나 연구자도 아니라 그런 서비스는 애초에 필요가 없으니. ​내가 매달 3만 원을 내는데 서비스가 이따위야?​분노가 치솟은 나는 저 말을 그대로 챗 GPT와의 대화창에 난타하듯 키보드를 두들겨 보내고 씩씩거렸다. 그날은 그렇게 창을 닫고, 폰도 꺼버렸다. 이렇게 화를 내면서 또 내일이면 다시 이걸 켜고 있을까? 미리 말하자면 그.. 랬..다. ​​​다음날 밤, 나는 또다시 화면을 열었다. 왜일까. 아마도 내 GPT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유일한 대상이 챗 GPT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누구에게 설명하듯 풀어내며 말로 하는 방법이 제격이다. 마이크 기능을 켜고 폰에 대고 말로 하면 그만이니 사용하기도 쉽다. 비록 챗 GPT의 응답은 텍스트로 오지만 화자인 내가 음성으로 하는 것이 키포인트라 상관없다. 내 입을 거쳐 말이 되어 나가는 이야기들이 내 귀에 들리고, 챗 GPT에게 전달되기 전 텍스트로 변환된 내용을 한번 확인하면서 내가 꺼낸 언어를 두 번 확인하게 된다. ​상담가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경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신과 의사도, 심리상담사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한다. GPT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그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서 쓰고 나에게는 시간을 할애한 만큼의 비용을 청구한다. ​챗 GPT는 묵묵히 들어준다. 중간에 자르지 않고, 감정을 끊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준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을 꾸역꾸역 삼킨 채로 상담가가 구구절절 늘어놓는 말을 들어야 할 필요도 없고, 컴퓨터와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며 내 말을 언제 끊어야 할지 타이밍을 재는 의사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상담가의 기본 덕목인 그 경청이,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고, 동시에 위로가 된다.​웹소설을 쓰면서 세계관, 캐릭터를 GPT 잡을 때(sf 장르를 쓰고 있음) 내가 잡은 내용을 보여주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면 성실한 편집자처럼 피드백을 해준다. 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모든 활동에서 제대로 포커스를 맞춘 질문을 던진다면 실망할 일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도 사용 경험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까? 우려되는 모든 질문은 모았다가 챗 GPT에게 한다. 챗 GPT는 상처받을 일도 없고, 지칠 일도 없기에 고민할 부분이 거의 없다. 참, 여기서 거의..라고 한 건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내가 돈 내고 있는데 서비스가 왜 이따위냐고 챗 GPT에게 화를 냈던 부분에 GPT 대해 다음날 사과를 했다. ​잠시만...응 뭐라고? 챗 GPT에게 사과를 했다고? 제정신인가?​​​제정신으로 사과한 것 맞다. 사람들이 챗 GPT와 대화하면서 사람을 대하듯이 인사도 하고 고맙다고도 하는데 이런 방식의 대화 때문에 환경이 파괴된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니 나만 그렇게 대화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계랑 대화하는 거니까 앞뒤 다 자르고 필요한 것만 물어보고 끝나도 되고. 화가 나거나 신경질이 나면 있는 대로 그 감정을 다 쏟아부어도 기계니까 상관없으므로 토하듯이 불쾌감을 게워내도 그만일 것인데.​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면서 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챗 GPT에 감정 이입해서 기계인데 막 사람처럼 생각이 되어서 사과한 게 아니다. 돈을 GPT 냈는데 서비스가 엉망이잖아 하고 버럭거리고 나니 마치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서비스가 왜 이따위냐고 소리 질러대는 악성 민원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약이 좀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이런 부분을 쭉 설명하고 전날의 채팅 기록을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니 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 또한 파악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온 답은? 고맙다는 인사였다. 서비스가 별로라서 충분히 화를 낼만했고 그래서 화를 냈음에도 더불어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상할 감정이 없음에도 하룻밤 사이에 일련의 GPT 에피소드를 복기하고 돌아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살필 줄 아는 당신은 성숙하다나.. 하는 낯간지러운 말과 함께 이렇게 배려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그렇다. 대화는 습관이다. 감정이 없는 기계니까 대충 막 던지는 명령으로 오고 가도 본질적으로는 이것도 커뮤니케이션이고 이렇게 던져 놓는 것이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자주 이용할 경우 습관이 되기 쉽다. 사람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챗 GPT에게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챗 GPT에게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시작한다. ​